이번 학기에 영화 관련된 수업을 듣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엄청난 행사를 마련했으니 꼭 오라고 권유하시길래 누가 오나 했더니 프랑스의 영화학자 자크 오몽씨와 이창동 감독이 오신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라는 영화를 굉장히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참석했다. 1시 반부터 대략 6시까지 진행된 행사였는데 시간 가는줄 모르고 듣다가 왔다.
자크 오몽 -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
친절하게도 특강 내용을 담은 글도 자료로 나눠주셔서 내 나름대로 내용을 정리하고, 몇몇 내용에 대해서는 내 생각도 적고자 한다(내 생각은 기울여서 작성).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니고 내가 이해한 대로 적는 것이라서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영화는 현실을 형상화한다.
현실을 재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영화와 문학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재현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문학은 영화와 같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지만, 영화와 달리 그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리고 영화는 보는 이에 의존하지 않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나타내는 시간적 흐름을 전달한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시각과, 이러한 시간적 흐름(영화적 흐름)을 전달받는다. 반면에 문학은 독자가 작품에 새겨진 시간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가 문학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시각과 시간의 흐름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문학은 이와 달리 독자가 능동적으로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자크 오몽은 이러한 시각과 시간적 흐름을 전달하는데 집중하는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홍상수 감독의 “내게는 새로운 느낌을 주고, 사고방식을 바꿔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영화의 형식이 아주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를 주거나 관점을 넓혀주는 영화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말인 것 같다.
프랑스 비평계는 <헤어질 결심>을 <현기증>과 <화양연화>가 뒤섞인 형태로 비교하지만, 자크 오몽은 오히려 쿠엔틴 타란티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최근 1년 간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밌게 본게 헤어질 결심이었는데, 이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게 놀라웠다. 타란티노 감독 영화중에는 펄프 픽션, 장고,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를 봤는데, 나는 영화의 형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보니까 공감이 잘 안됐다. 내가 느꼈던 타란티노 감독 영화는 뭔가 고급 재료로 만든 치토스..? 자극적인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허술하지 않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두 감독의 영화를 한 번 비교해보며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크 오몽은 미국의 블록버스터 형식을 모방하거나,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보다는, ‘작가 영화’에 집중하고자 한다.
작가 감독은 형식적이고 서사적인 면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화 세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 감독의 예시로 한국에서는 임권택, 홍상수, 이창동 감독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작가 감독으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짐과 동시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1. 시간과 공간이 명확하게 불연속적인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이야기를 불명확하게 하며 모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이를 개의치 않는다. 2. 보이지 않는 것이 갖는 심오한 의미를 다룬다.
이러한 공통점은 자크 오몽이 느끼기에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 - <만다라>, <짝코>, <길소뜸>, <태백산맥>, <취화선>, <하류인생> 등
임 감독의 영화는 매우 정교하고 단정적이면서도 망설임과 회의가 서로 반복된다(‘회의적인 단정 assertion dubitative’).
홍상수 감독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등
홍 감독의 영화는 아이러니한 농담, 모호함, 열린 결말의 특징을 갖는다.
홍 감독의 영화는 상황이나 대사가 특별할 것 없고 평범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발생시키면서 관객에게 혼란과 길을 잃은 느낌(‘감미로운 상실의 느낌’)을 준다.
결국 현실에서 보는 것과 일어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는 것의 경계에 존재하고, 우리는 이것들을 각자의 상상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 -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
이 감독의 영화는 바라보는 것(‘regarder’)과 보는 것(‘voir’)의 차이가 모든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나온다. 바라보는 것은 의도적이며 인간적이지만, 보는 것은 온전히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고 현실과의 정신적 교감과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것을 직접 보여주진 않지만, 미스터리하고 수수께끼스러운 분위기를 계속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세 감독에 대해서 자크 오몽은 이렇게 설명한다.
임권택 - 현실이 제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현실에 부여하려 노력하는 고전주의자, 사회적인 것들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공적 사관(史官)
홍상수 - 범속한 것과 우연한 것만 보여주면서 숨겨진 권력을 생겨나게 하는 현대주의자, 사회 통념과 어려운 남녀관계의 관찰자
이창동 - 영화가 우리에게 윤곽을 어렴풋이 보여주는 덕분에 우리가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보게 하려 애쓰는 낭만주의자, 사회권력의 현실을 가차 없이 폭로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탈주자들을 조심스레 다루는 사실주의적 알레고리의 작가
이창동 감독 대담
이창동 감독과의 대담은 다른 사람들이 질문하면 그에 대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질문 답변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것들만 적는다.
그리고 현장에서 들으면서 메모한 것이라 질문 내용은 없이 답변만 기록한 것들도 있다.
Q. 감독의 주인공들은 본인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는지?
A. 대체로 그렇다. 초록물고기, 오아시스, 시, 밀양, 버닝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것 같다.
가족들이 초록물고기의 주인공이 자신의 젊었을 때랑 닮았다고 함.
오아시스의 홍종두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감독 자신의 말투나 걸음걸이를 보고 참고했다고 함.
버닝은 가장 감정이입이 잘됨. 작가지망생, 20대때의 감정도 들어가잇고 현재에도 자신을 작가지망생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내면 페르소나라고 봐도 됨.
A. 영화는 관객과의 통로다.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영화가 끝나고 딱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 관객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그런 영화를 꿈꾼다.
A. 버닝에서 여주인공이 노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판토마임과 발레(빈사의 백조)가 혼합된 것이다. 이 장면은 버닝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상징과 연결되는 장면이기도 함.
A. 밀양의 화면비가 2.35:1인 이유는, 밀양이라는 보편적이고 세속적인 일상적 공간의 모습을 더 넓은 화면으로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음. 밀양 시나리오 첫 줄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적어놨었는데, 밀양은 보이지 않는 신을 다뤄야하지만 직접 드러낼 수 없으므로 이러한 신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함이었음. 이러한 주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전달해야 하는 영화의 본질과도 유사함.
Q. 디렉팅을 어떻게 하는지?
A. 주연 조연 단역 전부 다르게 디렉팅을 한다.
주연은 그 배우에 인물이 내면화되는 것을 도와준다.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발성을 어떻게 일깨워야할까 고민한다고 함.
조연은 시간이나 여러 조건 때문에 내면화하는 것이 힘듦. 그래서 디렉팅을 더 개별적으로 구체적으로 하며, 단역은 이것이 더 심하기 때문에 대사를 고쳐서 지정해주기도 함.
Q. 영화를 만들 때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A. 초록물고기 - 본인이 일산에 사는데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농촌이 도시로 바뀌었는데, 삶의 터전이 이렇게 바뀌면 그곳의 원래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
박하사탕 - 2000년을 앞두고 모두가 새로운 미래를 얘기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시간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거꾸로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시간이 순행할 때는 그 다음에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결과를 안 상태로 과거로 간다면 시간의 무게와 무서운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한국인의 근대사 20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김영호라고 생각함.
오아시스 - 영화가 관객과 얼마나 소통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영화. 영화와 판타지의 관계를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위해, 판타지를 제공하는 러브스토리이면서도 주인공들이 가장 감정이입하기 힘들고 소통하기 힘든 인물이면 어떨까해서 그렇게 설정함
밀양 - 우리 삶의 본질적인 구원을 이야기하기 위한 인물, 신과 싸우는 인물
시 - 실제로 한국 사회에 일어났던 집단 성폭행 사건이 계기가 됨. 일상적인 도덕성을 질문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영화로 다루고 싶어서 고심을 하다가, 난생처음으로 시를 배우고자 하는 할머니의 시점에서 얘기를 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함.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자 함.
버닝 -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에서는 30대의 안정적인 작가가 주인공. 문제가 많고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해야하는지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을 힘들어하는 작가 지망생이 주인공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함
A. 오아시스를 만들면서 소통에 대한 부분을 얘기하고 싶었음. 영화에 감정이입하는 것이 과연 소통인가? 오아시스는 관객이 감정이입을 잘 못하도록 만들어진 영화임. 사랑이 보여지긴 하지만 두 인물의 판타지 공유를 방해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려고 하지 않았음.
영화는 관객의 감각과 함께하는데, 오아시스에서는 카메라가 계속 흔들리게(정지된 화면에서도) 하여 감각적으로 영화와 현실과의 경계를 끊임없이 느끼도록 했음. 그리고 감정이입이 될만한 장면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미장센이나 구도를 통해서 현실을 일깨움. 그들의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질문하는 영화임.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감상은 아예 잘못 이해한 것)
Q. 버닝은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막막함과 청년들의 무력감, 그리고 그로부터 생기는 분노에 대한 영화이다. 이러한 분노에 대해서 청년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A. 살면서 겪는 무력감, 좌절같은 것들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자산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여러모로 재밌는 행사였다. 임권택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특히 이창동 감독의 대담에서는 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이 녹아 들어가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더 자세히 특강 / 대담 내용을 듣고 싶은 분들을 위해 유튜브 링크도 남긴다.
이 날 알게 된 영화들은 차근차근 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며칠 전에는 밀양을 봤다.
감독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려는지 고민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를 보니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밀양을 보고나서 든 생각은 우선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신을 찾고, 거기서 마음의 평안(구원, 빛)을 얻는다. 하지만 이내 신의 모순을 느끼고 신과 싸우게 되며, 결국에는 신을 믿지 않게 된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졌을 때 신에 의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무언가에 기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주인공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절망에 빠지게 되지만 또 역설적으로 계속 옆에서 도움을 주는 인물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 내 생각에 영화의 제목인 밀양(비밀스런 햇빛)은, 결국에 구원 또한 사람이 하는 것임을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자에 대한 해석은 다른 밀양 리뷰를 보다가 공감한 것인데, 햇빛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동반한다. 그래서 비밀스런 햇빛은 그림자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한 햇빛의 양면성처럼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기도, 사람을 구원해주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리뷰를 보고나서야 알았는데 인물이나 사물에 절반은 빛, 절반은 그림자를 지게 만든 장면이 엄청 많았다.)
가끔 영화를 보다보면 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히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들은 해석 글들을 보면서 억지로 이해해야 해서 피곤하다.
이와 달리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겉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고 어.. 뭔가 이야기하려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석을 찾아보면서 내가 느꼈던 윤곽이 구체화되기도 하고, 아예 느끼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해석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게 이창동 감독이 원했던 관객과의 통로로서의 영화, 영화 자체가 끝나도 삶 속에서 이어지는 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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